저울 위에 올라선 비자

2026년 2월 27일, H-1B 비자 추첨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오랜기간 유지되어 온 무작위 추첨, 이른바 '복권' 방식이 임금 수준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선발 체계로 교체된 것입니다. 연간 8만 5천 장의 H-1B 비자를 두고 수십만 명이 경쟁하는 구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이제 누구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는지를 결정하는 원리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같은 추첨함에 이름을 넣더라도 높은 임금을 제시 받은 사람의 이름이 더 여러 장 들어가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3월 4일부터 19일까지 회계연도 2027(FY2027) H-1B 초기 등록 기간이 열립니다. 새 규칙이 처음 적용되는 실전 무대입니다. 이번 주기가 가중 추첨 체제의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그 결과는 향후 H-1B 정책 논의의 방향까지 좌우할 수 있습니다. 한인 유학생, OPT 근무자, 그리고 이들을 고용하려는 기업에게 이 변화는 추상적인 정책 논의가 아니라 당장 다음 주에 시작되는 현실입니다. 무엇이 달라졌고,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짚어 봅니다.

무작위에서 가중치로, 게임의 규칙이 바뀌다

국토안보부(DHS)가 2025년 12월 29일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게재한 최종 규칙은 H-1B 추첨의 근본 원리를 재설계했습니다. 기존 방식에서는 모든 등록자가 동일한 확률로 추첨에 참여했습니다. 대기업의 고액 연봉 엔지니어든, 중소기업에 막 채용된 신입 직원이든 추첨함 안에서는 동등한 한 장의 이름표였습니다. 새 규칙은 이 동등함을 해체합니다. 노동부(DOL)의 직업고용임금통계(OEWS) 기준으로 측정한 적정임금(prevailing wage) 수준에 따라 등록자의 추첨 참여 횟수가 달라집니다.

구체적으로 적정임금 4단계(Level IV)에 해당하는 연봉을 제시하는 고용주의 등록은 추첨풀에 4번 들어갑니다. 3단계는 3번, 2단계는 2번, 그리고 가장 낮은 1단계는 1번만 들어갑니다. 같은 추첨이지만 더 높은 임금의 등록자가 더 많은 입장권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연간 H-1B 상한은 일반 6만 5천 장과 미국 내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를 위한 추가 2만 장, 합계 8만 5천 장으로 종전과 동일합니다. 달라진 것은 그 8만 5천 장이 누구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가 하는 점입니다.

적정임금 4단계 체계는 각 직종과 지역별로 다르게 산정됩니다. 1단계는 해당 직종 임금 분포의 약 17번째 백분위, 2단계는 34번째, 3단계는 50번째(중위값), 4단계는 67번째 백분위에 해당합니다. 같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 해도 뉴욕과 텍사스의 적정임금이 다르고, 같은 도시라도 직종에 따라 단계 기준이 달라집니다.

숫자가 말하는 새 추첨의 현실

새 규칙의 실질적 영향을 이해하려면 숫자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예산 모델(Penn Wharton Budget Model)이 2026년 2월 발표한 분석은 변화의 폭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기존 무작위 추첨에서 적정임금 1단계 등록자의 선발 확률은 약 27.1%였습니다. 새 가중치 체계에서 이 확률은 약 2.5%로 급락합니다.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경력 초기 근로자에게는 수치상으로도 체감상으로도 상당한 타격입니다.

DHS 자체 추산도 방향은 같습니다. 4단계 등록자의 선발 확률을 약 61%, 3단계 약 46%, 2단계 약 31%, 1단계 약 15%로 내다봤습니다. 와튼 모델과 DHS 추산 사이에 수치 차이가 있는 것은 전제 조건, 즉 전체 등록 규모와 임금 단계별 분포에 대한 가정이 다르기 때문이지만, 핵심 메시지는 일치합니다. 낮은 임금 단계일수록 선발 확률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사실입니다.

FY2020부터 FY2024까지의 H-1B 신청 데이터를 보면, 전체의 약 28%가 1단계, 55%가 2단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3단계는 12%, 4단계는 5%에 불과했습니다. 신청자의 83%가 1~2단계에 몰려 있다는 뜻입니다. 새 규칙 아래에서 이 다수파의 선발 확률이 대폭 낮아지게 됩니다. 와튼 분석에 따르면, 선발된 등록자 중 1단계의 비율은 기존 27%에서 14%로 줄어들고, 4단계의 비율은 15.5%에서 약 26%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추첨의 외형은 유지하되, 결과의 분포가 고임금 쪽으로 기울어지는 구조적 전환입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실제 제시 임금이 해당 직종과 지역의 적정임금보다 높을 경우 추첨 가중치 산정에서 상위 단계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조건신청서(LCA)상 2단계에 해당하는 직종이라도, 고용주가 제시한 실제 연봉이 같은 직종·지역의 3단계 적정임금 이상이면 추첨에서는 3단계 가중치(3번 입장)를 적용받게 됩니다. 이 규정은 고용주의 임금 전략에 따라 선발 확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둡니다. 다만, 고용주가 실제로 그 수준의 임금을 지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하며, 허위 임금 제시는 이민법 위반으로 심각한 후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합니다.

한인 지원자에게 의미하는 것

한인 H-1B 지원자 다수가 이 변화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 출신 지원자의 상당수는 미국 대학 졸업 후 OPT(선택적 실습 훈련)를 거쳐 H-1B로 전환하는 경로를 밟습니다. 졸업 직후 첫 직장의 연봉은 대체로 적정임금 1~2단계에 해당합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회계사,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같은 전문직종이라 하더라도 경력 초기에는 1~2단계 임금이 통상적입니다. 이들에게 새 추첨 규칙은 선발 확률의 체감할 수 있는 하락을 의미합니다. 경력을 쌓아 3~4단계 임금에 도달하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H-1B 추첨은 경력 초기에 필요한 비자이고, 그 시점에서 높은 임금 단계에 도달해 있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2025년 9월 대통령 포고로 도입된 10만 달러 H-1B 수수료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이 수수료는 해외에서 H-1B 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특정 신규 청원에 적용되며, 현재 세 건의 연방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20개 주가 공동으로 제기한 캘리포니아 대 놈(California v. Noem) 소송, 글로벌 너스 포스 대 트럼프(Global Nurse Force v. Trump) 소송, 그리고 DC 순회항소법원에서 신속 심리 중인 항소 건이 그것입니다. 2026년 2월 현재 법원이 이 수수료를 중지시키는 가처분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의료계를 중심으로 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100명의 연방 상·하원이 초당적으로 공동 서명한 서한이 DHS에 전달되었고, 미국의사협회(AMA)는 물론 기타 40개 전국 의료 단체가 의료 분야 고용주에 대한 면제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회계연도 2024 기준으로 의료 분야에서는 약 17,000건의 H-1B 청원이 승인되었습니다. 별도 보도에 의하면 국제 의학 졸업생(IMG)의사들의 상당수는 의료 인력 부족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고용주 입장에서 새 규칙은 전략적 재계산을 요구합니다. 지원자에게 제시하는 연봉을 높여 상위 임금 단계로 올리면 선발 확률이 올라가지만, 그만큼 인건비 부담이 커집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경우, 대기업과 동일한 임금 수준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규칙은 자본력 있는 대기업에 유리하고 중소 고용주에게 불리한 구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플러싱이나 포트리의 한인 회계법인이 한국어 가능 회계사를 H-1B로 채용하려 해도, 대형 회계법인이 제시하는 임금과 경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추첨 가중치까지 낮아지는 이중의 불리함을 안게 됩니다.

등록 개시 전, 실질적 점검 사항

3월 4일 등록 개시까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과 준비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가중치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등록 과정에서의 실수나 누락은 막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자신이 해당하는 적정임금 단계입니다. 고용주가 제시한 연봉이 어떤 단계에 해당하는지를 미리 파악하는 것은 기본적인 준비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실제 제시 임금이 상위 단계의 적정임금에 도달하면 추첨에서 더 높은 가중치를 적용 받을 수 있으므로, 고용주와 임금 수준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의 경우, 일반 추첨(6만 5천 장)에서 뽑히지 않으면 추가 2만 장의 석사 쿼터에서 한 번 더 추첨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은 종전과 동일합니다.

등록 기간은 동부 시간 3월 4일 정오부터 3월 19일 정오까지 이며, 선발 통보는 3월 31일까지 이민국(USCIS) 온라인 계정을 통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등록은 고용주 또는 그 대리인만 할 수 있고, 지원자 본인이 직접 등록할 수는 없습니다. 신규 등록의 경우 건당 215달러의 등록 수수료를 고용주가 부담합니다.

맺음말

가중 추첨제의 시행은 H-1B 비자를 둘러싼 경쟁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작위 추첨이라는 '운의 영역'이 임금 수준이라는 '시장 평가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1~2단계 임금에 해당하는 다수의 지원자에게 문이 좁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이 좁아졌다는 것이 닫혔다는 뜻은 아닙니다. DHS 추산에서도 1단계 등록자의 선발 확률이 약 15%로 제시되어 있고, 이는 0%가 아닙니다. 선발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한 대안을 미리 검토해 두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H-1B 하나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 복수의 경로를 병행하는 접근이 오히려 안전합니다. OPT 기간의 최대 활용, STEM 전공자의 경우 24개월 OPT 연장 가능 여부 확인, O-1 비자나 L-1 비자 같은 다른 취업 비자 경로의 탐색,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EB-2 NIW처럼 고용주 스폰서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영주권 카테고리까지 시야를 넓혀 두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3월 4일 등록 개시가 코앞입니다. 고용주와의 소통을 서두르고, 적정임금 단계를 확인하고, 등록 수수료와 서류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대응입니다. 새 규칙은 임금이라는 단일 기준에 과도한 비중을 부여한다는 비판도, 미국 노동시장의 건전성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옹호도 공존합니다. 어느 쪽이 옳든 규칙이 시행된 이상 그 안에서 최선의 위치를 잡는 일이 먼저입니다. 제도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불확실성이 뒤따르겠지만, 불확실성 속에서도 준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저울 위에 올라선 비자의 무게는, 결국 지원자 스스로의 역량과 고용주의 판단이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면책 조항: 본 칼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케이스에 대한 법적 조언이 아닙니다. 이민 관련 개별 사안은 반드시 이민법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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