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업 이민 노동자의 딜레마 — H-2A 임금 삭감과 대규모 추방 확대
농장에서 밭을 갈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압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랑을 따라 걸으며 상추를 뽑고 딸기를 따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그 일을 누가 하는지도. 캘리포니아 컨 카운티의 감귤 농장주 피터 벨루오미니는 이민 단속이 강화된 이후 평소 서른 명이던 수확 인력이 다섯 명으로 줄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나머지는 “집에 숨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전(前) 컨 카운티 농민연합 회장이기도 한 그는 수십 년간 농사를 지어왔지만, 이처럼 노동자들이 두려움에 밭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농무부(USDA) 산하 경제연구국(ERS)에 따르면 농업 노동력의 약 73퍼센트가 해외 출생자이며, 노동부의 전국 농업 노동자 조사(NAWS, 2020-22년)는 작물 생산 노동자의 42퍼센트가 노동 허가가 없는 서류 미비자라고 집계했습니다. 멕시코 출신이 서류 미비 농업 노동자의 88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캘리포니아 농민연합은 캘리포니아 농업 노동력의 약 절반이 서류 미비자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이고, 밥상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미국의 농장들은 두 가지 상반된 정책의 교차점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민 노동자 없이는 농업이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추방을 확대합니다. 이 모순이 2026년 봄, 미국 전역의 농경지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 법정에서 나온 고백
“일할 사람이 없는 땅은, 주인이 있어도 빈 땅이다. — 캘리포니아 농민 속담”
2026년 3월 18일, 캘리포니아 프레즈노 연방법원. 미국 농장 노동자 조합(United Farm Workers, UFW)이 트럼프 행정부의 H-2A 임금 삭감 규칙에 대해 제기한 소송의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법원 밖에서는 농장 노동자 수백 명이 집회를 열었고, 세자르 차베스의 유산을 이어받은 UFW의 깃발이 프레즈노의 봄바람에 펄럭였습니다. 법정 안에서는 예상치 못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행정부 측 변호사가 “이 일자리를 맡을 미국인이 충분하지 않습니다(there aren’t enough Americans to take these jobs)”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이민 노동자를 줄이겠다는 정책을 변호하러 나온 쪽이, 그 노동자 없이는 농업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법정 기록에 남긴 셈이었습니다.
문제의 규칙은 노동부(DOL)가 공포한 ‘불리 효과 임금률(Adverse Effect Wage Rate, AEWR)’ 개정안입니다. H-2A 농업 비자는 국내 노동자가 부족할 때 해외 노동자의 임시 고용을 허용하는 제도이고, AEWR은 고용주가 지급해야 하는 최저 임금 기준입니다. 본래 해당 지역의 평균 농업 임금을 기준으로 설정하여, H-2A 노동자 유입이 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내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였습니다. 새 규칙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H-2A 노동자를 두 계층으로 나누어 전체의 92퍼센트를 ‘비숙련’으로 분류하고, 그 임금 기준을 미국 전체 임금의 17번째 백분위수로 낮추었습니다. 농장 노동자 열 명 중 아홉 명 이상이 미국 하위 17퍼센트 수준의 대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실질적인 수치로 보면, H-2A 노동자의 최저 시급이 2025년의 15~20달러 범위에서 2026년에는 8~17달러로 급락했습니다. 경제정책연구소(EPI)는 평균 최저 시급이 17.43달러에서 13.70달러로 하락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커크 셰리프 연방판사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미국인 노동자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임금을 설정하는 것”이 시장 자체를 훼손한다고 지적했습니다. UFW가 구하는 것은 이 규칙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예비적 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이며, 판결은 곧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법정에서 이미 드러난 것은 분명합니다.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대가를 깎으려는 정책의 모순입니다.
◆ 44억 달러의 임금 삭감, 그리고 빈 들판
“값싼 음식 뒤에는 값싸게 취급받는 사람이 있다. — 세자르 차베스(Cesar Chavez)”
EPI의 추산에 따르면, AEWR 개정으로 35만 명 이상의 H-2A 노동자들은 연간 20억 달러 이상의 임금을 잃게 됩니다. 이는 임금 총액의 26~32퍼센트에 해당하는 삭감입니다. 영향은 H-2A 소지자에게 국한되지 않습니다. H-2A 임금이 떨어지면 같은 지역에서 같은 작물을 수확하는 미국인 노동자의 임금에도 하방 압력이 작용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 H-2A 노동자를 더 낮은 임금에 고용할 수 있으면, 미국인에게 높은 임금을 제시할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농업 노동자의 연간 임금 손실은 약 30억 달러, 총임금의 9퍼센트로 추정됩니다. 합산하면 전체 농업 노동자의 연간 임금 손실은 44억에서 54억 달러, 총임금의 10~12퍼센트에 이릅니다. 노동부 데이터에 근거한 추산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240억 달러의 임금 삭감이 예상됩니다. 한편 의회에서는 예산 수정안을 통해 H-2A 비자를 대폭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EPI는 이것이 새 임금 규칙과 결합되면 농업 노동자의 임금 하락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임금 삭감에 추방 공포가 겹치면서 들판이 비고 있습니다. 센트럴 밸리에서는 농장 노동자 출근율이 급감했고, NBC 베이에어리어는 노동자들이 단속 공포에 밭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 인력을 찾지 못한 농장주들이 작물이 밭에서 썩어가는 것을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위스콘신 공영 라디오(WPR)는 “추방 급증 전망이 이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가장 큰 걱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ABC 뉴스도 이민 단속 강화로 전국의 이주 농장 노동자들이 “고도 경계 상태”에 들어갔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캘리포니아 농장주는 올해 작부 면적 자체를 줄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2026년 3월 25일자 리버헤드로컬 보도에 따르면, 롱아일랜드 농민연합의 빌 잘라카르 사무국장은 올봄 인력이 “빠듯할 것(tight)”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동부 끝(East End) 지역 농장들이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봄 시즌을 시작하고 있으며, H-2A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롱아일랜드 농장주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1년 전부터 계획하고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와 증가하는 수수료 때문에 소규모 농장에는 문턱이 높습니다. 잘라카르 사무국장은 “농업계는 이민자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 노동집약적인 일을 하겠다는 미국인은 극소수”라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 ‘100퍼센트 미국인 노동력’이라는 구호
“정치인은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을 약속한다. — 멕시코 속담”
농무장관 브룩 롤린스는 2025년 7월 CNN 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사면(amnesty)은 없으며 대규모 추방은 계속된다”고 선언하면서 “100퍼센트 미국인 노동력”을 최종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메디케이드에 등록된 3,400만 명의 신체 건장한 성인이 농업 노동력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동시에 “식량 공급을 훼손하지 않도록 전략적이고 의도적으로 추방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고, “궁극적으로 답은 자동화와 현행 체계 내 개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발언에는 몇 겹의 모순이 포개져 있습니다. 메디케이드 수급자가 새벽 네 시에 딸기밭으로 나가 종일 허리를 숙이고 수확 작업을 할 것이라는 전제부터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미국 식품연구소(Food Institute)의 2026년 조사에서 레스토랑 운영자의 54퍼센트가 줄어드는 노동 인구를 최대 경영 우려로 꼽았고, 이 현상은 농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잘라카르 사무국장의 말처럼, 이 노동집약적인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습니다. 임금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한여름 40도 열기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과일을 따고,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뿌리채소를 캐는 일의 본질적인 고됨 앞에서, 다른 선택지가 있는 사람은 이 일을 택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노동부의 인력 수급 데이터를 보면, 농장주가 미국인 우선 고용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거의 없거나, 지원해도 며칠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H-2A 제도가 만들어진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동화도 만능은 아닙니다. 밀이나 옥수수 같은 대형 곡물 농장의 수확은 기계화가 진행되어 있지만, 딸기, 상추, 포도, 사과, 감귤류 같은 작물은 여전히 인간의 손이 필요합니다. 과실의 익은 정도를 판별하고, 줄기를 상하지 않게 꺾어내며, 크기와 색깔별로 분류하는 세밀한 작업을 현재의 농업 로봇이 경제성 있게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나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100퍼센트 미국인 노동력”은 선거 연설에서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봄이 오면 누군가는 밭에 나가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이미 현실이 답하고 있습니다.
◆ 밥상 위의 경제학
“농부가 사라지면 식탁이 사라진다. — 웬델 베리(Wendell Berry)”
이 문제는 농장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USDA는 2026년 식품 가격이 전년 대비 3.1퍼센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외식 비용은 3.7퍼센트, 가정 내 식품 비용은 약 3.1퍼센트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동력 감소는 이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입니다. 식료품 가격에서 노동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절반이며, 레스토랑의 경우 그 비율이 더 높습니다. 뉴스위크는 2026년에 가격이 가장 크게 오를 식품 목록을 보도하면서 노동력 부족과 이민 정책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여기에 멕시코와 캐나다 수입품에 대한 25퍼센트 관세 위협까지 더해지면, 식탁 위의 부담은 더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 차원의 영향도 상당합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2026년 1월 분석에 따르면 이민 감소가 GDP 성장률을 연간 0.2~0.3퍼센트포인트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도 이민 감소가 GDP 성장을 약 0.8퍼센트포인트 끌어내린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비당파 연구기관 미국정책재단(NFAP)의 전망은 더 심각한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이 연평균 GDP 성장률을 전망치 1.8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떨어뜨리고, 2025~2028년 누적 GDP를 1조 9,000억 달러 감소시킬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2035년까지 확대하면 그 손실은 12조 1,000억 달러, 1인당 34,369달러에 이릅니다. 이민자가 줄면 노동 공급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소비 지출, 주택 수요, 세수까지 줄어드는 연쇄 효과가 경제 전반에 퍼집니다.
뉴욕과 뉴저지의 한인 커뮤니티에도 파장이 직접적으로 미칩니다. 플러싱과 팰리세이즈 파크의 한인 식료품점과 식당들은 농산물 공급 불안정과 인건비 상승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 있습니다. 이민자는 미국 식품 산업 일자리 다섯 개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어서, 추방 공포가 확산되면 농장뿐 아니라 가공, 유통, 조리 전 단계에서 인력 공백이 생깁니다. 배추, 무, 깻잎 같은 한국 식자재를 재배하는 동부 소규모 농장들도 이민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베스티게이트 미드웨스트에 따르면 50만 명 이상의 이민자가 노동 허가를 잃으면서 농업 부문에 직접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있고, 그 영향이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고 식당 운영비가 치솟는 현실 속에서, 식탁 위의 김치 한 포기가 이민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인 사회에서도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맺음말
미국의 식량 시스템은 이민 노동자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감상이 아니라 USDA 통계가 말하는 사실이며, 프레즈노 연방법원에서 행정부 변호사가 스스로 인정한 현실입니다. 농업 노동력의 73퍼센트가 이민자이고, 42퍼센트가 서류 미비 상태라는 것은 미국 농업의 구조적 조건입니다. 미국인 노동자만으로 이 산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장의 어떤 데이터로도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임금을 삭감하면서 동시에 추방을 확대하는 정책은, 한 손으로 물을 퍼올리면서 다른 손으로 우물을 메우는 것과 같습니다. H-2A 임금을 26~32퍼센트 낮추면 합법적 경로로 일하러 오는 사람이 줄어들고, 추방 공포가 들판을 비우면 식량 가격은 오릅니다. 전체 농업 노동자의 연간 임금 손실이 44억에서 54억 달러에 이르는 동안,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그리고 식품 산업에 종사하는 한인 자영업자에게 전가됩니다.
봄이 왔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딸기밭에도, 롱아일랜드의 감자밭에도 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 싹을 거두어들일 손이 있을지 없을지가, 올해 미국 농업의 가장 절실한 질문입니다. 이민 정책이 현실과 만나는 곳은 워싱턴의 회의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허리를 숙이고 있는 미국의 들판입니다.
면책 조항: 본 칼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케이스에 대한 법적 조언이 아닙니다. 이민 관련 개별 사안은 반드시 이민법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조진동 변호사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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