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자 단기 파견, B-1과 ESTA의 경계에서
조지아주 사바나 근교의 배터리 공장 부지. 2025년 9월 4일, 이곳에서 미국 역사상 단일 사업장 기준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이 벌어졌습니다. 국토안보부 발표에 따르면 이날 체포된 인원은 475명이며, 이 가운데 다수가 한국 국적자로 확인되었습니다. 공장은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43억 달러를 투자한 합작 법인이었고, 체포된 이들 상당수는 장비 설치와 시운전을 위해 본사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이었습니다. 사건 직후 한국 정부는 전세기를 띄워 300명이 넘는 자국민을 본국으로 송환했고, 양국은 서둘러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습니다.
그 협의의 결과물이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까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곱 달 사이 B-1 비자 팩트시트가 갱신되었고, 서울의 미국대사관에는 새 상담 창구가 문을 열었으며, 연방 의회에는 새 비자 범주 신설 법안이 다시 발의되었습니다. 사건의 여진이 외교적 합의·제도적 창구·입법적 시도라는 세 층위로 동시에 퍼져 나간 셈입니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국 기업 주재원을 상대해 온 변호사로서 이번 합의의 내용과 한계, 그리고 현장에서 체감되는 실무적 함의를 차분히 짚어보고자 합니다.
◆ B-1과 ESTA, 그 좁은 문의 구조
“계약의 문언은 좁고, 현장의 업무는 넓다.”
B-1은 본래 관광 목적의 B-2와 한 쌍으로 묶여 상용 방문객을 위해 설계된 비자입니다. 상담, 회의 참석, 계약 협상, 시장 조사, 학술 회의 참가가 전형적인 활용 사례입니다. 국무부가 2026년 1월 27일 갱신한 팩트시트는 산업 현장과 관련해 한 가지 좁은 예외를 명시합니다. 해외에서 구매한 상업용·산업용 장비나 기계를 설치·수리·점검하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 혹은 미국 노동자에게 해당 기능을 교육하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 B-1 활용이 가능합니다. 단, 판매 계약서가 판매자 측의 서비스 제공 의무를 명시적으로 담아야 하고, 방문자는 해당 업무에 필수적인 고유 지식을 보유해야 하며, 미국 내 원천에서는 어떠한 보수도 받지 않아야 합니다. 건설 현장이라면 기준이 더욱 까다롭습니다. 다른 근로자를 감독하거나 교육하는 행위만 허용되며, 본인이 직접 건설·조립 작업에 손을 대면 그 순간 B-1의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ESTA 비자 면제 프로그램도 동일한 업무 기준이 적용되며, 단지 영사 인터뷰 절차가 생략될 뿐입니다.
체류 기간의 길이도 차이가 납니다. B-1은 최장 6개월까지 허용되는 반면 ESTA는 90일이 상한선이며, 연장이나 신분 변경도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조지아 사건이 법적으로 복잡했던 지점이 바로 이 경계선 위에 있었습니다. 공장 설비 설치와 시험 가동이라는 업무 자체는 원칙적으로 허용 범위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현장 집행의 잣대는 훨씬 좁게 적용되었고, 일부 근로자의 업무가 ‘설치 감독’의 외피를 넘어 ‘직접 노동’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이민법이 말하는 productive labor의 경계는 종이 위의 문구보다 현장의 사진과 작업 일지로 판가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일한 엔지니어가 오전에는 교육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직접 조립에 손을 대는 식의 혼재된 업무 패턴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구성입니다. 규정은 문장이지만 집행은 장면이며, 두 언어가 일치할 때에만 법은 근로자를 보호합니다. 계약서의 문언은 짧아도, 현장의 하루는 길고 다층적입니다. 파견 전 단계에서 법무팀과 현장 책임자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실제 업무 동선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두는 일이, 현장에서의 오해를 미리 차단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 2026년 1월 합의가 바꾼 것과 바꾸지 않은 것
“규정은 바뀌지 않았고, 해석만 또렷해졌다.”
미 국무부와 한국 외교부는 2025년 10월 초, 한국 기업이 B-1 비자 또는 ESTA를 활용해 미국 현장에 단기 인력을 파견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양국은 2025년 9월 조 현 외교장관과 루비오 미 국무장관 간 회담을 계기로 실무협의체를 구성했고, 9월 30일 워싱턴에서 첫 회의를 연 뒤 서울을 오가며 세부 지침을 다듬어 왔습니다. 2026년 1월 열린 실무협의에서는 B-1 팩트시트에 ‘특화 트레이너(specialized trainer)’ 항목이 새로 반영되어 자격 요건이 한층 명확해졌다고 한국 외교부는 밝혔습니다. 양국은 동시에 장비 설치와 시험 가동이라는 구체적 업무 범위, 판매 계약서상 서비스 조항의 필수성, 미국 내 급여 수령 금지 원칙을 서면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번 합의는 새로운 법률이 아니라 기존 규정의 해석을 구체화한 문서라는 점입니다. 규정 자체가 느슨해진 것이 아니며, 허용 업무의 외연이 넓어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어디까지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위반인지를 명시해 현장의 혼선을 줄이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 문서를 판례집처럼 참고해 파견 설계를 정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특화 트레이너’ 개념은 반도체·배터리·조선 분야의 초기 시운전 단계에서 본사 엔지니어가 짧은 기간 집중 교육을 수행하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이 범주에 해당하려면 교육 대상·기간·교재 등을 문서화해 영사관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말해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교육 명목’으로 포장된 생산 업무는 여전히 위반으로 분류될 위험이 큽니다. 문서화의 밀도가 합법성의 밀도입니다. 파견 계획서에는 교육 수혜자의 이름과 직무, 교육 시간표, 수료 기준, 파견 기간 종료 후의 귀국 일정까지 기재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영사 인터뷰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질문은 결국 누구를 무엇으로 가르치러 가느냐이기 때문입니다. 팩트시트의 문구는 간결하지만, 그 간결함 뒤에 놓인 증빙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 서울의 새 창구, KIT 데스크의 실체
“문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 문틀이 드러났을 뿐이다.”
제도적 창구도 함께 마련되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2025년 10월부터 시범 운영해 온 한국투자·여행 데스크(Korean Investment and Travel Desk, 통칭 KIT 데스크)를 2025년 12월 5일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초기 운영 대상은 삼성, LG, 현대, SK, 한화 등 대미 주요 투자 기업과 그 협력사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KIT 데스크는 시범 운영 기간에 이미 수백 건에 달하는 비자 사안을 처리했고, 협력사 직원의 출장 비자를 원청 대기업이 대신 신청하는 길도 공식적으로 열렸습니다. 서울에서는 외교부 주도로 비자 시스템 점검 태스크포스가 가동되어 영사 인터뷰 일정, 서류 준비 가이드, 파견 기간 관리 기준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도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KIT 데스크는 어디까지나 신청 지원과 상담 창구이지, 새로운 비자 범주를 창설하는 기구가 아닙니다. 심사 기준은 종전과 동일하고, 최종 판단 권한 역시 영사관에 귀속됩니다. 주요 대기업의 상담 우선순위가 확보된 것이지, 발급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중소 협력사의 엔지니어까지 이 경로의 혜택을 체감하려면 원청과의 파견 계약 설계가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또한 KIT 데스크는 서울의 창구일 뿐, 미국 입국 심사 단계에서 국토안보부 소속 관리들이 B-1 허용 업무의 경계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영사관에서 비자 스탬프를 받았다고 해서 공항에서의 입국 심사가 자동 통과되는 것은 아닙니다. CBP 심사관은 입국 목적과 체류 계획을 자체 재량으로 판단할 권한을 가지며, 판매 계약서 사본·숙소 증빙·귀국 항공권 같은 보조 서류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비자 발급과 현지에서의 업무 집행 사이에는 여전히 긴 회랑이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KIT 데스크가 발급을 도운 뒤 공항 2차 심사(Secondary Inspection)에서 돌려보내진 사례가 있다고 업계에서는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도는 서울에서 시작하지만, 검증은 애틀랜타와 뉴어크의 게이트에서 끝납니다. 출입국의 마지막 한 걸음은 여전히 현장 심사관의 재량에 놓여 있으며, 이 재량을 설득하는 것도 파견자 개인의 몫입니다.
◆ 새 비자 범주는 왜 멀리 있는가
“행정은 해석을 낳지만, 새 길은 의회가 낸다.”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해법입니다. 2019년 이래 미 의회에 반복적으로 상정되어 온 ‘파트너 위드 코리아 법안(Partner with Korea Act)’은 119대 의회에서도 하원 법안 H.R. 4687번으로 다시 발의되어 2025년 7월 24일 하원에 상정된 뒤 현재 계류 중입니다. 이 법안은 전문직 한국인을 위한 E-4 비자 범주를 신설하고 연간 1만 5,000개의 한도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H.R. 5534번 법안은 현재 호주에만 열려 있는 E-3 전문직 비자 프로그램에 한국을 추가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두 법안 모두 통과 시에는 단기 파견이 아니라 전문직 장기 고용까지 아우르는 근본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다만 워싱턴에서 열린 2026년 1월 협의에서 미국 측 관계자들은 입법적 제약상 근본적 변화는 쉽지 않다는 입장을 한국 외교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행정적 재해석은 가능하더라도, 새로운 비자 범주의 창설은 여전히 의회의 결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닙니다. 이민국적법(INA)은 비자 범주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통령의 행정 명령이나 국무부 지침만으로는 새 비자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의회의 이민 관련 법안은 당적 간 교착이 깊고, 포괄적 이민 개혁에 부속되지 않은 단일 국가 대상 법안이 통과된 사례가 드뭅니다. 파트너 위드 코리아 법안은 수차례 재발의되었지만 본회의 표결까지 간 전례가 없습니다. 한국 기업의 인력 운용 계획은 당분간 B-1·ESTA와 L-1·H-1B 사이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는 방향으로 가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새 비자 범주를 전제로 한 중장기 인력 계획은 희망 섞인 변수일 뿐, 확정 요인으로 삼기는 이릅니다. 입법의 문은 여전히 멀리에서 반쯤 닫혀 있습니다. 서류 한 장이 의회를 통과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공장 한 동이 올라가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의 속도가 산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그 간극 속에서, 기업과 변호사는 현재 주어진 도구로 버틸 수 있는 설계를 거듭 고민해야 합니다.
맺음말
조지아 사건 이후의 지난 일곱 달이 가져온 실무적 교훈은 간명합니다. 한국 본사와 미국 법인 사이를 오가는 엔지니어는 자신이 어떤 비자로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문서로 명확히 해두어야 안전합니다. 판매 계약서의 서비스 조항, 파견 기간, 급여 지급 주체, 현장에서의 구체적 역할이 모두 B-1 또는 ESTA의 허용 범위 안에 들어오는지 파견 전 단계에서 점검해야 합니다. 장기 근무가 예정된 인력이라면 L-1 주재원 비자나 H-1B 전문직 비자, 조건에 따라 E-1·E-2 투자자 비자 같은 별도 경로를 밟는 것이 원칙이며, 각 비자의 체류 기간·갱신 요건·배우자 취업 가능성이 서로 다르므로 단일 인력이 아니라 조직 단위의 이민 로드맵을 사전에 마련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가족 동반이 예정된 경우 배우자의 취업 자격(L-2, H-4 EAD 등)과 자녀의 학교 등록 일정까지 함께 설계해야 생활의 연속성이 확보됩니다.
이번 합의와 KIT 데스크, 새 팩트시트는 길을 새로 낸 것이 아니라 길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려준 문서들입니다. 그 윤곽 안에서 움직일 때, 사바나의 9월 새벽 같은 장면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반도체·배터리·조선·제약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고, 그만큼 엔지니어와 그 가족이 태평양을 건너는 일도 잦아질 것입니다. 제도의 틈이 좁은 만큼 준비의 밀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 파견이라도 변호사와 함께 파견 계약서 초안을 검토하고 현장 업무 범위를 서면으로 정해 두는 일이, 이제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기본 절차가 되어야 합니다. 조지아의 9월은 끝났지만, 그날의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태평양 너머의 공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이들은, 어떤 제도의 언어로 자신의 일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언어를 갖추는 일이, 당분간 한국 기업 주재원의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될 것입니다. 법은 늘 한 발짝 늦지만, 준비는 언제나 한 발짝 앞설 수 있습니다.
면책 조항: 본 칼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케이스에 대한 법적 조언이 아닙니다. 이민 관련 개별 사안은 반드시 이민법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조진동 변호사 사무실
NEW YORK OFFICE (Flushing) 35-24 154th Street, Flushing, NY 11354
(T) 718-353-2699 (F) 718-353-8132
NEW JERSEY OFFICE 560 Sylvan Avenue, 3Fl., Englewood Cliffs, NJ 07632
(T) 201-449-0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