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신청 처리 지연과 강화된 시험 사이에서

플러싱의 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던 어머니가 계산대 앞에서 잠시 말을 멈춥니다. 가방 안에는 오래전에 받은 영주권 카드가 들어 있습니다. 1995년에 받은 카드라면,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입니다. 자녀는 며칠 전부터 시민권 신청서 N-400 이야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한번 하시죠.” 말은 간단했지만, 어머니에게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시민권 신청은 서류 한 장을 더 내는 절차가 아니라, 오래 살아온 신분과 생활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최근 N-400은 지역과 사안에 따라 몇 달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고, 2025년 10월 20일 이후 접수분부터는 새 시민권 시험이 적용됩니다. 도덕성 심사와 개인 조사에 관한 이민국 지침도 예전보다 넓게 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영주권자가 서둘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오래 미루어 온 분이라면, 이제는 막연한 두려움과 실제 준비할 문제를 나누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한인 1세대 영주권자가 시민권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를, 조금 더 차분하고 현실적인 언어로 짚어 보려 합니다.

1. 영어 시험 한 줄 앞에 서 있는 30년

시험 문항이 늘었다는 소식보다 더 무거운 것은, 인터뷰장 문을 여는 마음입니다.

2025년 10월 20일 이후 접수된 N-400 신청자는 2025년 시민권 시험을 봅니다. 새 시험은 128개 문항 목록에서 20문항을 묻고, 12문항을 맞히면 통과하는 방식입니다. 9문항을 틀리면 그 자리에서 불합격이 됩니다. 다만 오래 거주한 고령 영주권자에게는 여전히 예외와 완화 규정이 있습니다. 만 50세 이상이고 영주권자로 20년 이상 거주했거나, 만 55세 이상이고 영주권자로 15년 이상 거주한 분은 영어시험 면제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시민권 시험도 모국어로 볼 수 있습니다. 만 65세 이상이고 영주권자로 20년 이상 거주한 분은 지정된 20개 문항 중 10문항을 질문받고 6문항을 맞히는 특별 배려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 상담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숫자보다 마음에 있습니다. “문제는 외우겠는데, 인터뷰장에 들어가는 게 겁나요.”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30년 동안 장사하고, 아이 키우고, 세금 내며 살아왔지만, 관공서 책상 앞에서 영어로 자신의 인생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굳는 분들이 있습니다. 영어 면제나 통역 가능 여부가 있더라도, 신청서의 내용은 결국 본인의 기록입니다. 주소, 여행, 세금, 체포나 티켓, 가족관계, 과거 신청 이력은 미리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시민권 시험은 공부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준비는, 자신의 30년 기록을 낯설지 않게 다시 읽어 보는 일입니다.

2. 한국 국적, 그리고 어머니의 한 나라

시민권을 얻는 일은 새 권리를 얻는 일이지만, 어떤 분에게는 오래 붙잡고 있던 이름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 국적법상 대한민국 국민이 자진하여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은 그때 상실됩니다. 미국 시민권을 받는 성인 영주권자에게 이 부분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다만 만 65세 이상 외국국적동포의 경우, 한국에 입국하여 일정한 절차에 따라 국적회복허가를 신청하고 외국국적불행사서약을 하면 복수국적을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65세가 넘었다고 해서 미국 시민권 취득과 동시에 자동으로 복수국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적상실 신고, 거소 또는 체류 관련 절차, 국적회복 신청 등은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많은 자녀에게 시민권은 부모의 안전장치처럼 보입니다. 투표권, 장기 해외체류의 안정성, 가족초청의 범위, 공적 혜택과 신분 안정성까지 생각하면 당연히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부모 세대에게 한국 국적은 여권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온 이름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고향의 가족관계등록부, 부모 산소, 명절에 돌아가던 동네, 한국에서 불리던 이름이 모두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시민권 신청하시죠”라고 말할 때, 부모는 “그럼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닌 건가”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 질문은 법률 상담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필요한 경우 한국 국적회복 가능성까지 같이 확인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3. 도덕성 심사, 개인 조사, 그리고 30년의 생활

신청서 한 장은 때로 지난 생활 전체를 다시 꺼내 보게 만듭니다.

2025년 8월 15일, 이민국은 시민권 신청자의 도덕성, 즉 good moral character 심사를 더 엄격하고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정책 메모를 발표했습니다. 기존에도 시민권 신청자는 일반적으로 신청 전 5년, 시민권자 배우자 기준의 경우 3년 동안의 도덕성을 보여야 했고, 그 이전의 행위도 경우에 따라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 새 지침은 단순히 결격 사유가 없다는 점만이 아니라, 신청자의 생활 전반과 긍정적 요소도 함께 보겠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이어 2025년 8월 26일에는 INA 335(a)에 따른 개인 조사를 재개한다는 지침도 나왔습니다. 이것이 모든 신청자에게 이웃 방문 조사가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 조사 범위와 방식은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아직 현장에서 어떻게 쌓여 갈지는 더 지켜보아야 합니다. 다만 신청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진 것이 사실입니다. 오래된 체포 기록, 세금 문제, 자녀양육비, 음주운전, 허위진술, 선거등록, 장기 해외체류, 과거 영주권 취득 과정의 문제는 시민권 신청 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작은 교통위반 하나가 곧바로 시민권을 막는다는 식으로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겼던 기록이 신청서와 인터뷰에서 다시 나올 수는 있습니다. 30년을 성실히 살아온 분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기록을 정리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민권 준비는 흠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4. 한 식탁의 두 신분

시민권자 자녀와 영주권자 부모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다른 법적 시간을 살아갑니다.

저녁 식탁에서 자녀는 어머니에게 다시 말합니다. “엄마, 이제 시민권 하세요.” 자녀에게는 당연한 말입니다. 본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시민권자였고, 미국 밖에 오래 머문다고 해서 시민권을 잃을 걱정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투표도 하고, 배심원 통지서도 받아 보고, 여권 갱신도 비교적 익숙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미국은 오래 산 나라이지, 처음부터 내 나라였던 것은 아닙니다. 영주권자는 미국에서 살 권리가 있지만, 시민권자와 같은 신분은 아닙니다. 시민권자가 되면 형제자매 초청을 할 수 있고, 장기 해외체류에 따른 영주권 포기 문제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반대로 영주권자는 해외에 오래 머물 때 재입국과 거주의사 문제가 생길 수 있고, 6개월 또는 1년 이상의 체류는 사안에 따라 설명이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영주권 카드가 만료되어도 영주권 자체가 곧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카드 갱신, 여행, 취업 확인, 운전면허 갱신 같은 일상 절차에서 불편과 불안이 생깁니다. 최근 N-400을 제대로 접수하면 영주권 카드 유효기간이 일정 기간 자동 연장되는 제도도 있지만, 그렇다고 시민권 신청이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맞는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는 안전을 말하고, 부모는 정체성을 생각합니다. 한쪽이 맞고 한쪽이 틀린 대화가 아닙니다. 시민권 신청은 가족이 부모를 설득하는 절차가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삶을 이해받으면서 결정해야 하는 절차입니다.

맺음말

시민권 신청서를 앞에 두면 사람들은 대개 시험과 처리기간을 먼저 묻습니다. 몇 개월 걸리는지, 몇 문제를 맞혀야 하는지, 영어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모두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오래 살아온 1세대 영주권자에게 더 깊은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내가 이제 어떤 시민으로 살 것인가. 한국 국적은 어떻게 되는가. 내 기록에 설명해야 할 부분은 없는가. 자녀가 권하는 안전과 내가 느끼는 망설임 사이에서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가. 한인 1세대 중 이미 시민권을 취득한 분들도 많지만, 아직 영주권자로 남아 있는 분들에게 그 선택은 늦었다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오래 미룬 결정일수록, 막연한 두려움으로만 남겨 두기보다 정확한 정보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시험 준비는 시험 준비대로, 국적 문제는 국적 문제대로, 도덕성이나 기록 문제는 기록 문제대로 따로 확인하면 길이 보입니다. 시민권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분에게는 법적 안정이고, 어떤 분에게는 가족과 상의해야 할 이름의 문제이며, 또 어떤 분에게는 지난 30년을 정리하는 조용한 절차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두르라는 말이 아니라, 피하지 말고 제대로 살펴보자는 말입니다. 그 결정이 시민권 신청이든, 조금 더 준비한 뒤의 신청이든, 적어도 두려움이 아니라 이해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면책 조항: 본 칼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케이스에 대한 법적 조언이 아닙니다. 이민법과 국적 관련 사안은 개인의 기록, 체류 이력, 가족관계, 형사·세금 기록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개별 사안은 반드시 이민법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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