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추방’에서 ‘범죄자 추방’으로, 정치 계절이 만드는 정책의 온도차
2026년 3월 10일, 플로리다 도랄. 하원 공화당 의원들의 연례 워크숍에서 백악관 부비서실장 제임스 블레어가 전달한 메시지는 간결했습니다. ‘대규모 추방(mass deportation)’ 대신 ‘범죄 불법체류자 추방’을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1년 전 대선 캠프의 핵심 구호였던 표현을 이제 입에 담지 말라는 지시입니다. 하원 공화당 대회 의장 리사 맥클레인 의원도 같은 취지의 발언으로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같은 주,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은 더 솔직했습니다. “히스패닉과 라틴계 유권자들 사이에서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부 이민 단속이 과도하다고 인식되었거든요. 지금 우리는 궤도 수정(course correction) 모드에 있습니다.” 새 국토안보부 장관이 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한 나라의 이민 정책이 선거 달력에 따라 온도가 바뀌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2026년 11월 중간선거까지 채 8개월이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적 생존 논리가 이민 정책의 표현 방식을 재편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숫자가 말하는 정치적 압력
워싱턴포스트-ABC뉴스-입소스 공동 여론조사(2026년 2월 12~17일, 성인 2,589명, 오차범위 ±2%)에 따르면, 미국인의 58%가 트럼프 대통령의 추방 정책이 “지나치다(gone too far)”고 응답했습니다. 지난해 10월 50%에서 8%포인트 상승한 수치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ICE의 단속 전술에 대해 62% 대 31%로 반대가 찬성을 압도했으며, 트럼프의 이민 정책 처리에 대한 지지율은 40%에 머물렀습니다. 폭스뉴스 자체 여론조사(1월 23~26일, 등록유권자 1,005명)에서도 59%가 ICE의 활동을 “너무 공격적”이라고 답했으며, 이는 지난 7월 대비 10%포인트 오른 결과입니다.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층 에서조차 14%포인트, 무당파에서 22%포인트 상승한 것이 눈에 띕니다. 보수 성향 매체의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변화의 폭이 공화당 지지 기반 깊숙이까지 미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론의 흐름을 바꾼 계기는 구체적 사건들이었습니다. 2026년 1월 7일 미니애폴리스에서 ICE 요원 조너선 로스의 총에 미국 시민 르네 구드(37세)가 사망했습니다. 이민국은 전날 역대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 작전인 ‘오퍼레이션 메트로 서지’를 발표하며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일대에 2,000명의 요원을 배치한 직후였습니다. 같은 달 24일에는 재향군인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였던 알렉스 프레티(37세)가 이민 단속 시위 현장에서 CBP 요원 두 명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프레티는 미국 시민이었습니다. 사건을 둘러싼 정부의 초기 설명은 후속 영상 및 보도와 상충했고, 프레티가 실제로 총을 겨눴다는 주장은 현재까지 강한 의문을 받고 있습니다. 미네소타주 연방 판사 제리 블랙웰은 2월 3일 자신에게 올라온 ICE 사건의 “압도적 다수”가 합법 체류자와 관련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원 기록과 보도에 따르면, 합법 체류 중이거나 신분 신청이 계류 중인 사람들, 난민, 아동까지 대거 구금된 사례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유권자의 행동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리스 예측조사(Morris Predictive Insights, 2월 6~10일, 유권자 1,500명)에 따르면, 2024년 트럼프 연합의 약 14%가 이탈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탈 이유로는 생활비와 경제 문제가 49%로 가장 높았고, ICE의 도시 배치가 32%, 이민 단속·추방 정책이 27%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 이탈자 층은 충성 지지층에 비해 더 젊고(중위연령 40세 대 54세), 더 다양한 인종 구성(백인 비히스패닉 54% 대 76%)을 보입니다. 여론조사 수치가 정책의 언어를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 텍사스의 경고등
2026년 3월 텍사스 프라이머리는 공화당에 적신호를 보냈습니다. 텍사스 주무장관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440만 표 이상이 행사되어 주 역사상 최고 수준의 프라이머리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민주당에서만 약 230만 표가 나왔고 공화당은 약 220만 표에 약간 못 미쳤습니다. 라틴계 다수 카운티의 투표는 최근 3회 선거 평균 대비 약 37%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인 스타 카운티(라틴계 97%)의 투표율은 67%, 이달고 카운티(라틴계 92%)는 51% 급증했습니다. 라틴계 다수 카운티 전체를 보면, 최근 3회 선거 평균 대비 약 37%의 투표 증가가 나타났습니다.
라틴계 유권자의 65%가 민주당 프라이머리에 투표했고, 35%가 공화당을 택했습니다.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라틴계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흐름이 역전 조짐을 보이는 것입니다. 유니도스US(UnidosUS)가 텍사스 히스패닉 프라이머리 유권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2월 25일~3월 1일)에서 3분의 1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조치가 시민권을 침해하고 미국 시민을 구금·추방 위험에 빠뜨린다고 응답했으며, 또 다른 3분의 1은 ICE가 통제를 벗어났고 강력한 감독과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행정부의 이민 단속과 추방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은 14%에 그쳤습니다. 생활비, 일자리 문제와 함께 이민 단속이 투표장으로 향하게 한 3대 요인이었습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궤도 수정’을 공개적으로 말한 배경에는 이 숫자들이 있습니다. 마크웨인 멀린 상원의원을 신임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하고, 크리스티 놈 장관을 교체하는 인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 반발하는 또 다른 세력
백악관의 메시징 전환이 모든 보수 진영에 먹히는 것은 아닙니다. 전 관세국경보호청(CBP) 국장 마크 모건과 블랙워터 창설자 에릭 프린스, 그리고 헤리티지 재단 등 보수 단체들이 참여한 ‘대규모 추방 연합(Mass Deportation Coalition)’은 이민법 전문가, 전직 고위 관리, 현장 출신 법 집행관으로 구성된 로비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4월 1일까지 2026년 내 최소 ICE 내부 추방 100만 건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 및 운영 계획을 담은 ‘메뉴’를 공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궁극적 목표는 2027년과 2028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의 단속 규모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민 단속을 “쇼나 슬로건이 아닌 실질적인 작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유타주 마이크 리 상원의원은 소셜 미디어에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며 “만약 한다면 따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빌리 그리빈은 “워싱턴 기득권 세력이 행정부의 가장 인기 있고 중요한 공약을 폐기하길 바라기 때문에 리 상원의원이 그들의 소문 공장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리 상원의원에게 대규모 추방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공약이며, 중간선거를 앞둔 수사적 후퇴는 결국 정책적 후퇴로 이어진다는 논리입니다.
백악관은 자체 진영 내에서도 ‘선거용 포장’과 ‘원칙 고수’ 사이의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습니다. 백악관 대변인 아비게일 잭슨은 “행정부의 이민 단속 의제를 변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대통령의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미국 사회를 위협하는 범죄 불법체류자의 추방”이라고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 추방자의 약 70%가 범죄 기록 보유자라고 주장하는 수치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행사장에서 전달된 메시지와 공식 발표 사이의 간극은 뚜렷하며, 이 간극이야말로 현재 공화당 내부의 노선 갈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역사 속의 데자뷔
이민 정책이 선거 주기에 따라 진자 운동을 하는 것은 미국 정치사에서 반복되어 온 패턴입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부시 행정부는 포괄적 이민 개혁 법안을 추진했으나 하원 공화당이 단속 강화만을 주장하며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이민 문제를 둘러싼 당내 균열 역시 공화당이 하원 31석과 상원 6석을 잃는 결과에 일조했습니다. 이민이 유권자를 결집시키기도 하고 분열시키기도 하는 이중적 의제라는 사실이 이미 그때 확인된 것입니다.
2014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불법체류 부모에 대한 추방 유예 행정 조치(DAPA)를 중간선거가 끝난 11월 20일까지 미루었습니다. 원래 9월 말까지 발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선거에 미칠 파장을 의식해 시기를 늦춘 것입니다. 이민 단체들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계산이 우선했습니다. 선거 전에는 논란을 피하려는 본능이 당파를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것입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캐러밴’과 국경 위기를 부각했을 때, 이민은 공화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의제였습니다. 그러나 교외 지역 유권자의 이탈로 하원에서 40석을 잃었습니다. 같은 의제가 때로는 무기가 되고 때로는 부메랑이 되는 셈입니다. 당시에도 이민 강경 노선이 지지층의 열정에는 불을 붙였지만, 중도층과 교외 유권자를 잃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2026년의 상황은 과거와 다른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단속 과정에서 미국 시민이 사망하고 합법 체류자가 구금되는 사례가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이민 단속이 더 이상 ‘불법체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맺음말
한인 이민자 사회에 이 정치적 역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단기적으로는 단속의 강도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범죄자 추방’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백악관의 방향은 전과 기록이 없는 합법 체류자에 대한 압박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실제로 백악관과 DHS가 추방자의 70%가 범죄 기록 보유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무차별 단속’보다 ‘선별적 단속’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규모 추방 연합과 같은 강경파의 반발이 거세지면, 정책의 방향이 다시 흔들릴 여지도 있습니다. 메시징이 바뀌었다고 해서 현장의 단속 방식이 즉각 변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유의할 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자신의 법적 지위를 최대한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비자 갱신이나 신분 변경 신청이 예정되어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진행하고,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이 정치적 바람의 방향과 무관하게 유효한 대비책입니다. 범죄 기록이 없는 합법 체류자라 하더라도, 운전면허 정지 기록이나 사소한 교통 위반 벌금 미납도 단속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모든 법적 의무를 빠짐없이 이행해야 합니다. 정치 계절은 바뀌지만, 법 앞에 서는 개인의 기록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면책 조항: 본 칼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케이스에 대한 법적 조언이 아닙니다. 이민 관련 개별 사안은 반드시 이민법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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